김강자, "성매매 단속 집창촌 합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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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류재복 작성일 15-03-16 15:28본문
"성매매 특별법으론 성매매 못 없앱니다. 처벌법 만드니까 업소들은 더 음성화되고 변종 업소도 생겨났어요. 이대론 안돼요." 15년 전 관내 집창촌인 '미아리 텍사스'를 대대적으로 단속해 업주들로부터 '저승사자'로 불렸던 김강자(70) 전 서울종암경찰서장이 다음달 9일 헌법재판소의 '성매매 특별법' 위헌법률심판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나선다. 그는 "성매매 특별법은 위헌(違憲)이고, 집창촌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지난 13일 그는 "지금의 성매매 특별법은 폐지되는 게 맞다"고 했다. 한때 성매매 업소와 전쟁을 치렀던 그는 왜 특별법 폐지의 전도사가 된 것일까. 그의 위헌론에는 먹고 살기 위한 소위 '생계형 성매매'를 하는 여성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는 "배우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입에 풀칠하려고 집창촌에 들어간 애들을 많이 만났다"며 "직접 가서 만나보니 정말 생계형인 애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성매매 여성들을 자식 부르듯 '애들'이라고 했다.
그는 2000년 서울 종암경찰서장 때 '미아리 텍사스' 단속을 벌이면서 성매매 여성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처음 종암경찰서에 왔을 때는 뭣도 모르고 모든 성매매를 다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기반부터 취약하고 도움하나 받을 데 없는 애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여성들이 모여있는 곳이 집창촌이었다"고 했다.
그는 집창촌 단속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것은 10대 때부터 성매매를 시작한 A양을 만난 이후라고 했다. 아버지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열네살 때 가출한 A양은 벽돌공장에서 일하면서 20대 초반의 공장 운전기사와 동거하게 됐고 결국 아이를 셋 낳았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도망간 뒤 살길이 막막해진 그는 결국 "집장촌에 들어오면 선수금을 준다"는 말에 월세와 쌀값을 마련하기 위해 성매매를 시작했다.
김 전 서장은 "A양에게 애들을 입양시키고 (집창촌을) 빠져나오라고 설득했는데 벗어나질 못했다"며 "A양은 아버지한테 구타 당한 기억이 악몽으로 남아있어 애들은 반드시 제 손으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서른살이 훌쩍 넘은 그녀는 포항의 한 집창촌에서 일한다고 한다. 김 전 서장은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에게 '다른 일 하라'고 말해봤자 결국엔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더라"며 "최소 생계비를 벌면서 자활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탈(脫)성매매' 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매매 특별법 폐지를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성매매를 전면 허용하자는 건 아니다. 고급 룸살롱, 오피스텔 성매매 등 소위 비생계형 성매매 여성과 유흥을 즐기기 위한 성매수 남성에 대한 단속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집창촌을 합법화해 생계형 성매매 여성은 보호하고, 장애인 등 성(性) 소외 남성들에게 욕구해소 기회를 줘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처럼 단속하면 성매매 업소들은 더 음지 속으로 숨고, 숨으면 또 단속이 어려워진다"며 "현행법은 인력과 예산없이 그냥 단속하라는 건데 이대로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어려웠던 단속의 기억도 털어놨다.
"제 경험상 업소 1개를 단속하는데 최소한 10명의 경찰관이 필요합니다. 성매매 특별법을 시행해 놓고 단속에 필요한 경찰 인력은 전혀 늘리지 않았어요. 2~3명은 출입구를 지키고, 2~3명은 손님인 척 가장해 업주에게 화대를 건네는 순간 포박하고 나머지 인력은 동시에 각 방에 쳐들어가야 합니다. 한데, 눈치빠른 손님들은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면 단속인 줄 알고 콘돔을 바로 변기에 버리거나 속옷을 입죠. 그들이 '안했다'고 딱 잡아떼면 처벌할 방법이 없어요."
그는 2004년 특별법 시행 때도 반대 입장이었다. '풍선효과'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생계형 성매매 형태인 집창촌부터 단속하면 성매매 여성들이 건전한 직업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단속을 피해 주택가로 들어가 전국을 오염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당시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건 없고, 성매매는 '오피방' '키스방' 등으로 더욱 음성화했다.
2013년 법원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을 때도 김 전 서장은 "자발적 성매매 여성까지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환영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처음엔 성매매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집창촌 현장을 보고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고 했다.
김강자는 누구?
2000년 서울 종암경찰서장 재직 당시 '미아리텍사스촌' 단속 등을 통해 성매매와 전쟁을 벌인 인물이다. 1970년 여경 공채로 경찰학교에 들어간 그는 서울경찰청 민원실장, 노원경찰서 방범과장 등을 거쳤다. 충북 옥천경찰서장 재임시절에는 미성년자를 고용한 '티켓다방'을 단속했고, 종암경찰서장로 부임하면서 서울 시내 첫 여성 경찰서장이 됐다. 당시 경찰서장이 직접 집창촌을 돌며 단속 활동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지금은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객원교수로 있다.
[류재복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