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훈장, 후손 찾지 못해 쌓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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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25시 작성일15-01-27 13:53 조회1,923회 댓글0건본문
정춘수·이승구 등 충북만 81명
[류재복 대기자]
올해로 광복 69주년을 맞았지만 아직까지 후손을 찾지 못해 전달하지 못한 독립유공자의 훈장이 국고에 쌓여가고 있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1907년 4월 초 한봉수 의장과 함께 의병 활동을 벌인 정춘수 선생.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던 정 선생은 같은 해 5월 괴산 서면 사치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본군 2명을 사살한 뒤 군수품을 빼앗는 전과를 올린다.
이후에도 일본 의병 토벌에 협조한 밀정을 사살하거나 군자금 활동을 벌이는 등 목천 일대에서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일본군에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11년 6월 형무소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후손을 찾지 못해 아직도 훈장은 국고에 남아있다.
진천에 묘소가 있지만 돌보는 이가 없어 해마다 보훈지청에서 관리를 하는 현실이다. 영동면장 등으로 재직하다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재산까지 처분한 뒤 중국으로 망명했던 이승구 선생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한독립단 지단장 등으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다 1920년 7월 23일 일본군과 교전 끝에 순국했지만 1998년 추서된 건국훈장 애족장은 결국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했다.
이처럼 가족을 찾지 못한 안타까운 훈장의 사연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15일 청주보훈지청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미전수 공적자는 전국적으로 4,586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충북을 본적으로 한 독립유공자만 독립장 이상 6명을 포함해 모두 81명이다. 국가보훈처는 수년 전부터 유공자 후손 찾기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제적부 등 관련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다 당시 일제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쓰거나 숨어서 활동한 경우가 많아서다. 이에 따라 당시 기록이나 사료 등을 발굴해 철저히 검증하고, 포상 신청을 돕는 전문 기구의 설치나 학술용역 사업 등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방안 마련도 요구되고 있다.
청주보훈지청 이종하 보훈과장은 "정부는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로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유공자들의 후손을 찾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고에 쌓여가는 독립유공자의 훈장은 흐르는 세월 속에 잊어버린 광복의 영광을 의미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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