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경영의 댓가, ‘폭스바겐’ 리콜비용, 벌금 10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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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찬 작성일15-10-10 08:42 조회2,040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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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자동차그룹인 폭스바겐이 최악의 진흙탕에 빠졌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폭스바겐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리콜 비용과 벌금 등으로 최대 780억 유로(약 102조1800억 원)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폭스바겐의 순이익보다 무려 7배가 많은 액수다. 현재 폭스바겐의 총자산은 3512억 유로(약 460조7428억 원)다. 설상가상 이번 사태로 폭스바겐 주가가 급락하자 주주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냈다. 유명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쌓아온 거대한 자동차 제국이 아우디와 포르셰 등 최고급 브랜드를 매각하면서까지 생존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폭스바겐의 몰락은 ‘고성장 신화’에 눈이 먼 경영진과 독특한 지배구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사임한 마르틴 빈터코른 전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2018년까지 연간 1000만 대를 생산하는 세계 1위 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었다. 특히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인 미국은 이들에게 성장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블루오션 시장이었다. 배기가스 조작 의혹은 오래전에 폭스바겐 경영진에 보고됐지만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묵인됐다. 한때 모범적인 지배구조로 칭송받던 노사 공동경영도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을 방치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계1등에 눈멀어 낭떠러지로
“디젤 모델이 미국 시장에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기회(big break)가 될 것이다.” 폭스바겐이 이른바 ‘클린 디젤’ 엔진을 탑재한 모델 ‘제타 블루 TDI’를 미국 시장에 선보이던 2008년. 겐스 하들러 폭스바겐 동력장치개발팀장은 이 모델을 두고 ‘전 세계 동급 차종 중 가장 깨끗하고 경제적인 차’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폭스바겐 경영진은 환호했다. 미국 소비자들도 독일 업체의 놀라운 디젤 기술력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폭스바겐 역사의 가장 치욕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유럽과 중국에서 명실상부한 자동차 선두 업체였다. 올 1∼8월 기준 유럽과 중국 시장 점유율이 각각 25.1%와 17.5%로 1위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올 1∼9월 미국 시장 점유율은 3.5%로 9위에 그쳤다. 글로벌 경쟁 업체인 GM(17.6%), 도요타(14.3%)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현대자동차(4.4%)보다도 낮다. 폭스바겐이 미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자동차 시장 구조 탓인데 미국 시장의 지난해 디젤차 판매 비중은 2.75%에 불과했다. 가솔린(93.7%)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전 세계에서 디젤차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폭스바겐으로서는 미국에서 디젤차 수요를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미국의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시키는 차를 만들려면 비용이 더 든다. 유럽 투자회사 엑산BNP파리바에 따르면 유로 5 배출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차량 한 대당 700유로가 들지만 유로 6 기준이 되면 1300유로가 든다. 윌리엄 베커 전미청정공기협회(NACAA) 전무이사는 “폭스바겐의 조작 행위는 결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비용을 절감해 다른 업체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폭스바겐이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는 독일 기업문화와 달리 양과 실적에 집중하면서 배출가스 조작까지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노사 공동경영, 문제점 은폐
폭스바겐의 지배구조는 오너 경영, 정부 지분,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혼재돼 감독위원회(Aufsichtsrat)와 이사회(Vorstand)란 이중 지배구조를 지녔다. 감독위원회는 기업경영정책을 결정하고 이사회는 기업 경영을 책임진다. 영향력이 큰 감독이사회의 구성을 보면 전체 20명 중에 근로자 및 노동조합 대표가 10명으로 가장 많다. 경영진의 고용과 해고를 책임지고 경영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협의체에 주주·근로자 대표가 절반씩 참여한 셈이다. 나머지는 오너라 할 수 있는 포르셰와 피에히 가문 5명, 폴크스바겐의 고향 격인 니더작센 주에서 2명 등이다. 폴크스바겐을 노사가 공동 경영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폭스바겐의 밀접한 노사관계는 모범사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경영에 대한 혁신 없이 고용 보장만을 최우선으로 삼는 분위기가 문제를 은폐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익명의 폭스바겐 한 전직 경영자는 “폭스바겐만큼 오너와 노조가 밀접하게 일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며 “감독이사회는 절반의 구성원(노조 대표)에게 고용을 보장하는데, 독일인에게 고용을 제공하라는 국가적인 사명이라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꼬집었다.
높은 인건비, 무리한 생산량 압박
고용 보장을 우선시하다 보니 생산성이 낮았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차량 1000만 대를 생산하기 위해 60만 명을 고용했다. 경쟁사인 도요타가 연간 900만 대를 생산하기 위해 34만 명을 고용한 것에 비하면 생산성이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지난해 폭스바겐 노동자 1인당 영업이익은 3497만 원(2만6700유로)에 그쳤다. 도요타 9564만 원(986만 엔), GM 6963만 원(6만27달러), 한국 자동차업체 5개사(현대·기아·한국GM·르노삼성·쌍용) 평균 4122만 원보다도 낮다. 영업이익은 낮지만 대규모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폭스바겐은 ‘1등 타이틀’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인건비를 포함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량생산을 위한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 결국 물량 기준으로 전 세계 1등을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책임소재, 아직도 오리무중
이번 사태가 발생한 지 약 3주가 흘렀지만 누가 과연 이런 일을 했는가에 대한 명확한 책임 소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8일 미국에서 열린 폭스바겐 청문회에서 마이클 혼 미국법인 대표도 “회사 차원에서 결정한 게 아니라 개인의 소행”이라며 “테스트 조작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다.
조작 파문이 난 직후 폭스바겐 감독위원회도 “우리들은 몰랐던 일이며 범죄에 가담한 직원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회에 참석한 크리스 콜린스 의원은 “단순히 몇몇 기술자가 이런 일을 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울리히 하켄베르크 아우디 연구개발 책임자, 볼프강 하츠 레이싱 엔진 개발자, 하인츠야코프 노이서 폴크스바겐 개발총괄이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폭스바겐은 당분간 미국 시장에 신차를 내놓기 힘들어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7일 폭스바겐 미국법인이 환경보호국(EPA)에 제출한 2016년 신형 디젤 자동차 성능 증명 신청을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혼 미국법인 대표는 “EPA 승인을 받지 않은 자동차는 판매할 수 없다”고 밝히며 나빠진 여론 탓에 당분간 판매를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독일 검찰은 8일 배출가스 조작 의혹과 관련해 폭스바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폭스바겐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권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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