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섭 가곡선집 제6권 131곡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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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복 작성일15-02-14 01:46 조회2,641회 댓글0건본문
‘아 영원하라 나의조국’ 등 山, 江, 祖國을 주제로
광복-작곡, 쌍70주년 기념 맞는 작곡계 巨匠
금년은 광복 70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작곡계의 거장인 최영섭 선생의 작곡 70주년을 맞는 해로 쌍 70주년의 뜻 깊은 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원로 작곡가 최영섭 선생이 최근 그의 가곡집 제6권 131곡집이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 131곡에는 총신대 서요한 교수가 작사한 작품도 25편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된 최영섭 선생의 작품 중 국내 최고의 서예가 초당 이무호 선생은 "아 독도야"와 남북한 통일 애국가 "영원하라 무궁화야"는 직접 친필로 돌비에 새겨 경상북도(울릉군)와 청와대에 헌정할 계획이며 그밖에 "삼각산아", "내장산아"도 친필로 돌비에 새겨 서울시 성북구청과 정읍시에 헌정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리워라 풍악산아"는 금강산의 가을을 노래한 가곡으로 지난 해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된바 있다. 몇 년 전 최영섭 선생은 ‘설악산아’ 우리혈맥 ‘독도야’를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소프라노 조수미에게 헌정하기도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스트라우스 등등의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노래한 작품은 몇 편 안되지만 최영섭 선생은 조국인 대한민국에 태어나 강, 산, 바다, 그리고 정을 주제로 한 작곡이 가장 방대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총신대 서요한교수가 작사를 하고 최영섭 선생이 작곡한 노래를 보면 ‘낙동강은 알고 있다’. ‘흘러라 압록강아’, ‘그리워라 풍악산아’, ‘내장산아’, ‘삼각산아’, ‘설악산아’, ‘마니산아’, ‘아, 독도여!’ ‘아, 우리 동해여!’ ‘아, 우리 서해여!’ ‘아, 이어도’. ‘우리혈맥 독도야’, ‘겨레의 숭고한 별이라네’, ‘낙화암의 꽃님’, ‘마르지 않는 위안부의 눈물’, ‘무너져라 3.8선 장벽아’, ‘사당골에 피는 꽃은’, ‘순교자의 흘린 피로’, ‘어서 오라 그날이여’, ‘영원 하라 무궁화여’, ‘살아 백년 죽어 천년’, ‘하늘보고 별을 보며’, ‘한겨레의 불꽃이여’, ‘한산도 달빛’, ‘아 영원 하라 나의조국’ 등 강, 산, 조국을 표현했다.
그러나 작사 중에 ‘흘러라 압록강아’ ‘아 독도여’는 작품의 백미가 되며 그의 작곡 ‘그리운 금강산’이 발표된 지 올해로 꼭 54년이 된다. 최영섭 선생의 작품은 그동안 ‘통일 주제가’이자 ‘민족 가곡’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세계적인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 월드’(My World)에도 수록될 만큼 국가 대표급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총신대 서요한교수가 작사한 25편도 포함
서 교수가 준 ‘주홍글씨’ 詩 한편이 인연 맺게 해
특히 최영섭 선생은 25편의 작사를 해준 총신대 서요한 교수에 대해 “시인의 시에서도 간혹 인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요한 교수의 작품은 꾸밈이 없다. 느낀 그대로를 작시해서 작곡하는데도 막힘이 없다. 그의 시를 읽으면 동감이 되고 바로 멜로디로 나온다”면서 “서 교수가 작사한 ‘설악산아’는 오케스트라만 잘 어우러진다면 ‘그리운 금강산’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저의 콘서트에 피날레는 ‘그리운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아’가 장식할 것이며 5년전인 2010년 2월에 만난 서 교수는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 분으로 그가 준 시 한편 ‘주홍글씨’가 내게 커다란 울림과 충격으로 다가와 그 시를 읽으면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한국 음악계의 대작곡가인 최영섭 선생과 신학교수이자 시인인 서요한 박사와의 인연은 필연의 만남인 것 같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대부분 조국, 강산과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강과 산, 바다, 그리고 인정을 소재로 한 가곡이 100곡이 넘고 있다.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압록강은 흐른다’, ‘백두산은 솟아 있다’, ‘낙동강 칠백리’, ‘한강의 노래’, ‘남산에 올라’ 등 주로 조국의 산하를 작곡했다. 그는 그동안 300여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 3분의1은 민족 가곡, 그러니까 조국을 생각하면서 작곡한 것이 100곡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움과 금강산의 아름다움, 통일의 염원을 담았으며 최근 발표한 ‘아 우리 독도여’에는 한국인의 기백을, 위안부 노래에는 슬픔을 녹였다.
현재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마당에는 그의 노래를 기념하는 한옥집 만 한 크기의 노래비가, 그리고 강화도 통일평화전망대에도 그만한 크기로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에 최영섭 선생은 “해외에 다니면서 수백개 노래비를 봤는데 ‘그리운 금강산’만 한 크기의 노래비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슈베르트의 ‘보리수’ 노래비는 숲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노래를 많이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강화도이며 학창시절은 인천에서 보냈다.
‘그리운 금강산’ 탄생의 일화를 보면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61년 8월이다. KBS가 남산에 있던 시절, ‘남산에 올라’, ‘한강의 노래’, ‘낙동강 칠백리’, ‘백두산은 솟아 있다’ 등의 곡을 발표할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실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작곡하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 하는 거요”라고 말했다.
이때 최 선생은 “아차 싶구나” 하는 생각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상억(19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안 그래도 가사를 이미 써 놨으니 가져 가시오”라고 했다. 그날로 그는 밤새 오선지에 음표를 그렸다.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 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그 후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에야 밝히는 진실. ‘그리운 금강산’의 첫 대목에서 ‘누구의 주제련가~’의 주제는 ‘주재’(主宰)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주재했다는 뜻인데 처음 악보집을 인쇄할 때 ‘주제’라고 나온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6살 때 강화도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고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 뱃노래’에 매료됐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호르겔 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고 인천중학교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우면서 1949년 경복중학교 6학년 때 첫 작곡 발표회를 가졌고 그 후 서울대 음대 시절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거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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